살아있는 로마서 (124) (16:7)
살아있는 로마서 (124) (16:7)
나의 친척이며 한 때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사도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고,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사람에게는 재물보다도 명예가 소중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이름을 남겼다고, 남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이름이란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질 때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듣는 순간에, 그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 사람>, 반대로 누군가의 이름을 듣는 순간에, 그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 이름 듣기도 싫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의 이름이 듣는 순간에 정신이 맑아지고 새롭게 살아갈 희망이 솟구치는 그런 이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이름들이 되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로마서 16장에 사도 바울이 안부를 묻는 이 이름들은 그를 든든하게 지켜준 성벽과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베네도, 마리아 등등, 그들의 이름만 떠올려도 어둔 밤하늘에서 밝은 별빛을 만난 것처럼 바울의 마음이 환해지는 이름들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전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밝아지게 하고, 삶의 희망을 솟구치게 하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믿는 사람들을 ‘타인을 위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역시 바울에게 그런 존재였다고 묵상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이 부부인지, 아니면 각각의 사람인지는 성별조차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1) <바울의 친척>이다. 2) 바울과 함께 갇힌 적이 있다. 3) 주변 사람, 특별히 사도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다. 4) 바울이 먼저 믿은 사람들로 인정한다는 본문의 정보가 전부입니다.
가까운 사이로,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들로 인정한다는 것은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고, 실제로 가까이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까이 하고 싶은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먼저 믿은 사람들이고, 주변의 좋은 평을 듣고 있다면, 늘 그 사람들의 이름은 바울의 마음을 환하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의 마음을 맑아지게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서 만나지는 사람들에게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으로 좋은 평으로 그들의 마음을 밝아지게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평화를 기원합니다. +